남제주구대정면사무소, 붉은 벽돌에 담긴 제주의 근대 시간

서귀포시 대정읍의 오래된 거리 한쪽, 붉은 벽돌 건물이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 ‘남제주구대정면사무소’라는 현판이 걸린 건물은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오후 햇살이 벽돌 틈새를 부드럽게 감싸며, 창문 너머로 옛 행정의 시간들이 스며 나오는 듯했습니다. 주변의 신식 건물들 사이에서도 단정한 비율과 단단한 형태가 눈에 띄었습니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세워진 근대 행정청사로, 대정 지역의 중심 역할을 해온 건축물입니다. 벽돌과 목재, 유리창이 어우러진 이 오래된 건물 안에는 근대 제주 행정의 흔적과 그 시대의 공기가 함께 머물러 있었습니다.

 

 

 

 

1. 대정읍 골목길 끝에서 만난 근대의 건물

 

남제주구대정면사무소는 서귀포시 대정읍 하모리 중심가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내비게이션에 ‘남제주구대정면사무소 국가유산’을 입력하면 대정오일장 인근으로 안내되며, 도보로 3분 정도 이동하면 붉은 벽돌의 외벽이 눈에 들어옵니다. 주변에는 카페와 작은 식당이 있지만, 건물 앞만큼은 유독 고요했습니다. 길을 따라 정돈된 돌담이 이어지고, 은행나무 아래로 노란 잎이 바람에 흩날렸습니다. 건물 앞에 놓인 표지석에는 ‘대한민국 등록문화재’ 문구가 새겨져 있었고, 안내판에는 건물의 연혁과 구조에 대한 설명이 정갈하게 정리되어 있었습니다. 오래된 행정 공간의 문을 다시 열어보는 듯한 설렘이 들었습니다.

 

 

2. 벽돌과 목재가 어우러진 근대 건축미

 

건물은 단층 구조로, 붉은 벽돌을 이용해 외벽을 쌓고 지붕에는 일본식 목조 트러스를 적용한 형태입니다. 출입문 위에는 얇은 차양이 돌출되어 있고, 양쪽 창문은 흰색 목재 프레임으로 단정히 마감되어 있습니다. 창문 유리에는 세월의 흔적이 비치고, 일부는 미세하게 울퉁불퉁한 질감이 남아 있었습니다. 실내는 나무 바닥과 천장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으며, 중앙 복도를 기준으로 좌우에 사무실과 회의실이 배치되어 있습니다. 바닥을 밟을 때마다 나무 특유의 소리가 은근히 울렸습니다. 단정하고 소박한 형태이지만, 시대의 변화 속에서도 품격을 잃지 않은 건물입니다. 바람이 창문 사이를 지나며 오래된 서류의 냄새와 섞여 그 시절의 공기가 그대로 느껴졌습니다.

 

 

3. 행정의 중심에서 역사로 남은 공간

 

이 건물은 1930년대 후반, 대정면의 행정 업무를 수행하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이후 남제주군청으로 승격되기 전까지 이곳이 지역 행정의 중심이었습니다. 문서 발급, 민원 처리, 주민 회합 등 지역민들의 일상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루어졌다고 합니다. 해방 이후에도 한동안 면사무소로 사용되었고, 지금은 당시의 행정 구조와 공간 배치를 그대로 보여주는 귀중한 기록으로 남아 있습니다. 안내문에는 “제주의 근대 행정 발전을 보여주는 대표적 건축물”이라는 설명이 적혀 있었습니다. 벽에 걸린 옛 사진 속에는 양복 차림의 공무원들과 주민들이 함께 찍은 모습이 남아 있었습니다. 사람과 공간이 함께 세월을 기록한, 작지만 깊은 건물이었습니다.

 

 

4. 보존 상태와 현재의 활용

 

현재 남제주구대정면사무소는 외관과 구조가 매우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지붕과 창틀 일부는 복원되었지만, 원형의 비율과 질감은 그대로 유지되었습니다. 내부는 전시공간으로 개방되어 있으며, 당시의 집기류와 문서함, 전화기 등이 그대로 재현되어 있습니다. 건물 앞마당에는 안내 표지판과 벤치가 설치되어 있어 잠시 쉬어가기에 좋습니다. 관리가 세심하게 이루어져 있어 먼지 하나 없이 정돈된 분위기였습니다. 조명이 은은하게 비춰 벽돌의 붉은색이 더욱 깊게 느껴졌고, 나무 문손잡이의 촉감이 따뜻했습니다. 근대 건축의 단단함과 세월의 부드러움이 자연스럽게 공존하고 있었습니다.

 

 

5. 주변과 함께 즐기는 역사 탐방 코스

 

면사무소를 둘러본 뒤에는 인근의 ‘대정향교’나 ‘이중섭 거리’를 함께 방문하기 좋습니다. 특히 ‘송악산 일제동굴진지’로 이어지는 코스는 근대와 전쟁기의 제주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근처의 ‘추사 김정희 유배지’에서는 조선 후기 학문과 예술의 흔적을 함께 느낄 수 있습니다. 점심시간에는 대정오일장 인근의 ‘대정국수’에서 고기국수를 맛보거나, ‘하모카페거리’에서 커피를 마시며 잠시 여유를 즐기기 좋습니다. 하루 코스로 제주의 근현대사를 따라 걷다 보면, 남제주구대정면사무소가 단순한 건물이 아니라 지역의 시간 축을 이어주는 지점이라는 걸 느끼게 됩니다.

 

 

6. 관람 팁과 느껴지는 인상

 

이곳은 오전보다 오후에 방문하는 것이 좋습니다. 서쪽으로 떨어지는 햇빛이 벽돌 표면에 따뜻하게 닿으며, 건물의 입체감이 돋보입니다. 내부 관람 시에는 플래시 사용을 자제하고, 조용히 공간을 천천히 둘러보면 벽과 나무의 숨결이 느껴집니다. 입구 오른편 창가에 앉아 있으면 바람이 스치며 나무창이 살짝 흔들리는 소리가 납니다. 그 소리는 마치 여전히 문서를 넘기던 공무원의 손끝처럼 잔잔했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으면, 오래된 책상 위에 놓인 펜과 서류의 냄새가 되살아나는 듯했습니다. 건물은 말없이 서 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사람의 시간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었습니다.

 

 

마무리

 

남제주구대정면사무소는 제주의 근대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공간이었습니다. 화려하진 않지만, 단단한 벽돌 하나하나가 그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손끝을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문을 나서며 뒤돌아보니, 석양빛이 창문을 통해 내부로 스며들고 있었습니다. 그 빛이 마치 오랜 기록 위에 내려앉은 시간의 온기처럼 느껴졌습니다. 지금은 행정의 중심이 아닌 역사 속 건물이 되었지만, 여전히 ‘공공의 자리’로서 품격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바람이 벽돌 틈새를 스치며 지나갈 때마다, 과거의 목소리가 조용히 들려오는 듯했습니다. 제주의 시간은 그 벽 안에서 여전히 살아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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